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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삶나눔

이 곳은 크라이스트처치, 저희는 안전합니다.

by Joy_Tanyo_Kim 2019.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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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살고 있는 타뇨입니다. 며칠 전 갑작스러운 총기난사 테러로 인해 이 곳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이 큰 충격과 슬픔에 잠겼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두려움에 휩싸인 사람들은 아마도 유색인종인 저희같은 사람들입니다. 요며칠 카톡이나 이메일, 블로그 등을 통해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셨는데요. 저희 부부는 안전합니다. 많이 걱정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몸은 안전하지만, 아무래도 이런 일이 있었다보니 조금 더 주변을 경계하게 되기는 합니다. 거리로 나설 때면 혹시나 저 백인의 마음 속에도 테러를 가했던 그 사람과 동일한 이민자를 향한 혐오가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설 때도 있답니다. 어쩌면 이번 일을 통해 여태 드러내지는 않았었지만 마음 속에 백인우월주의나 반이민주의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과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분열이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재신다 총리의 발빠른 대처와 현명한 연설로 '뉴질랜드는 이민자 모두의 집이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분위기와 애도의 물결이 빠르게 형성되었습니다. 


실제로 뉴질랜드는 이민자들로 인해 세워진 나라입니다. 18세기 말 마오리족이 폴리네시아에서 뉴질랜드로 이주하여 정착하면서 이 곳의 역사가 시작되었죠. 길고 하얀 구름이라는 뜻의 '아오테아로아'가 뉴질랜드 최초의 이름이며 이후 유럽인들의 이주가 시작되면서 이 곳의 이름은 '뉴질랜드'가 되었습니다. 뿌리부터 이민자들의 나라에서 이민자 혐오로 인한 테러가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1위, 이민자의 나라, 이민자의 천국, 테러청정지역, 아이들을 키우기 좋은 곳' 등 뉴질랜드를 지칭하던 수많은 수식어가 아닌 '이민자 혐오, 모스크 테러, 총기난사' 등의 수식어로 뉴질랜드가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권에 등극했습니다. 




사건이 발생했던 날, 저희 부부는 웨스트필드 쇼핑몰에서 장을 보고 있었습니다. 평일 중 오랜만에 찾아온 신랑의 휴일이라 신랑과 함께 소박한 데이트를 즐겼었지요. 총기난사 테러가 발생했던 모스크(이슬람 사원)는 저희가 있던 쇼핑몰에서 차로 5분 거리로 굉장히 가까웠어요. 볼 일을 모두 보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모스크 방향으로 달려가는 수많은 경찰차와 구급차를 만났습니다. 이렇게 다급하게 많은 경찰차들이 달려가는 것은 본 적이 없었기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 대체 무슨 일이지? ] 라는 궁금증을 가졌었지요. 




집으로 돌아왔을 때 뉴스와 한인카톡방 등을 통해 갑작스러운 테러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헤글리 파크 앞에 위치한 모스크에서 큰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에 총기난사 테러가 있었다고요.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화도 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사한지 서로에 대한 안부를 묻는 연락이었지요. 저 또한 이 곳에서 가깝게 지내는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며 안전을 확인했었습니다. 


범인들이 린우드로 이동해서 2차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하는 동안 크라이스트처치의 모든 유치원, 중고등학교, 대학교,  관공서, 레스토랑, 쇼핑몰 등이 락다운이 되었습니다. 정부의 허가가 날 때까지 아무도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오후 3시에 하교하는 학생들은 저녁 6시 30분이 되어서 겨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어요. 쇼핑몰에 갇힌 친구는 저녁 7시가 되어서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고 하더군요. 같은 집에 살고 있는 플랫 청년도 평소보다 빠르게 집으로 돌아왔었는데요. 직장이 총기테러사건 현장 바로 옆이라 모든 직원들이 패닉상태에 빠졌고 자신도 급하게 퇴근했다고 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지금 크라이스트처치는 여전히 긴장상태입니다. 길거리로 나가면 기관총을 들고 무장한 경찰을 쉽게 만날 수 있어요. 물론 범인은 모두 잡혔지만,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한동안은 무장한 경찰들과 경찰차, 헬기 등이 도시 곳곳을 순찰할 것이라고 합니다. 


사건이 터지고 한 두시간이 지나자 한국의 포털사이트에서도 뉴질랜드 테러에 대한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었어요. 다음넷이 먼저 올라오고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그 뒤를 네이버가 이었던 것 같네요. 헌데 올라오는 기사들마다 제목이 너무나 자극적이라 보는 교민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기자들은 노출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 더 자극적으로 적을 것이라 생각은 되지만... 


더 가슴 아팠던 부분은 댓글이었어요. 50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한 사람의 일방적인 테러로 인해 목숨을 잃었던 사건입니다. 종교와 인종을 떠나서 사람이 죽었는데 잘 죽었다는 댓글이 너무 많아서 그게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중에 나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호흡했던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 살고 있는 저희에게는 참 충격적이었거든요. 이 다음은 나같은 아시안이 타켓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여러가지 마음이 교차하는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흘러 벌써 월요일입니다. 크라이스트처치의 추모의 열기는 더욱 거세지고 있네요. 사건이 발생한 모스크 주변의 몇몇 지역들은 출입이 통제되었습니다. 집에 있던 사람들은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고 출근이나 볼일을 보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던 사람들은 며칠 째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꼭 집에 들어가야한다면 거주하고 있다는 증명을 한 뒤 들어갈 수 있지만 허가가 떨어질 때까지 다시 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 가깝게 지내는 지인이 지금 이 상황이라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답니다. 


테러범의 페이스북 테러 생중계로 인한 피해도 컸습니다. 퍼져나가던 영상들이 지금은 모두 차단이 되었지만 초반에 실시간으로 영상을 본 사람들이 워낙 많고 그 중에는 고등학생들도 굉장히 많다고 하네요. 아이들이 [ 처음에는 주작이거나 게임인줄 알았어요. 근데 보다보니까 너무 리얼해서 이상하다 싶었어요 ] 라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 이럴 때일 수록 더 평소처럼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해 ] 라고 말하며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거운 분위기가 고여있을수록 결국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모두들 애를 쓰는 거겠죠. 총기테러 이후에도 저희는 살아갑니다. 헤글리 파크에서 조깅도 하고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쇼핑몰에서 쇼핑도 하고 마트에서 장도 보죠. 살다보니, 살아가다보니 또 내 삶을 살아가게 되더라고요. 누군가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 말하더군요. 


오늘 살아가고 있는 것에 더 감사하게 되는 시간도 되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당했을지도 몰랐던 테러는 내가 살고 있는 오늘 이 시간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줬던 것 같아요. 건강하게 오늘을 살 수 있음에, 살아감에 감사합니다. 


여러분, 모두 함께 바래주세요. 크라이스트처치의 테러로 인한 아픔이 하루 빨리 씻겨 나갈 수 있도록, 이 무고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다른 땅에서도 테러로 인한 피해가 더 이상 없을 수 있도록 함께 바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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